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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왜 마음에 없는 칭찬이라도 장려해야 할 미덕인가?: 칭찬 [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강준만 교수 “아첨은 쉽지만 칭찬은 어렵다” 수많은 유명인들이 칭찬에 대해 멋진 말들을 남겼습니다만, 양과 질에서 모두 압도적인 명언을 남긴 이는 17세기 프랑스 작가로 풍자와 역설의 잠언으로 유명한 라 로슈푸코(François de La Rochefoucauld, 1613~1680)가 아닌가 합니다. 그의 명언들을 몇 개 감상해볼까요? “칭찬에 손사래를 치는 건 한번 더 칭찬받고 싶어하는 욕망의 표현일 뿐이다.” “우리가 상대를 칭찬하는 것은 상대에게 칭찬을 되돌려 받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자신을 속이는 칭찬보다는 자신에게 유익한 비판을 선호할 만큼 충분한 지혜를 갖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종종 칭찬이란 수법을 통해서 그런 식이 아니면 감히 폭로할 수 없는 그 .. 더보기
왜 후안무치는 정치인의 필수 덕목인가? 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정치인의 경쟁력이 된 후안무치(厚顔無恥) “아는 게 없으면서도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정치인의 자질이 충분하다.” 영국 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의 말이다. 소련 지도자 니키타 흐루시초프(Nikita Khrushchev, 1894-1971)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치인은 어느 나라에서건 똑같다. 그들은 강도 없는 곳에 다리를 놓아 주겠다고 약속하는 사람들이다”는 명언을 남겼다. 이걸 꼭 연구를 해봐야 아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도리스 그레이버(Doris Graber)의 연구(1988)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그러한 주장을 ‘가감해서’ 받아들이면서 일상적으로 무시한다. 유권자들의 이런 ‘지혜’가 오히려 정치인의.. 더보기
왜 우리는 남들이 욕망하는 것을 보고서 그것을 욕망할까? : 욕망 [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욕망은 인간의 본질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 생활에서 욕구와 욕망은 구분없이 혼용되기도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둘은 좀 다른 것이지요.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을 원한다면 그건 욕구(need)지만,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닌 것을 원한다면 그건 욕망(desire)입니다. 그간 수많은 사상가들이 욕망의 정체에 대해 많은 말을 쏟아 냈는데, 그 핵심은 인간의 욕망엔 끝이 없다는 것이었지요. “인간의 욕망은 만족할 줄 모른다. 왜냐하면 본성에 의해 우리는 모든 것을 갈구하도록 창조되었지만, 운명에 의해 우리는 이 모든 것 가운데 단지 일부만 얻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간의 마음은 항상 불만족 상태에 놓여 있다.” 이탈리아 사상가 마키아벨리(.. 더보기
<장호순 칼럼>가짜 뉴스를 퇴치하는 방법 장호순 교수 칼럼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는 새해 덕담이 무색하게 코로나 바이러스가 연초부터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 넣었다. 사스와 메르 스에 이어 코로나 바이러스 등과 같은 새로운 전염성 질병이 인간사회를 덥칠 가능성은 점점 더 높다고 과학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인간의 끊임없는 자연파괴로 생기는 변종 바이러스가 첨단 대중교통 수단을 통해 쉽게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염병 바이러스만큼 빨리 그리고 널리 퍼지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가짜 뉴스이다. 과거 사스와 메르스 사태와 마찬가지로 코로나 바이러스도 많은 가짜 뉴스와 함께 퍼져 나아갔다. 전염병 바이러스처럼 가짜 뉴스도 불안과 공포라는 인간의 심리와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라는 기술적 조건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가짜 뉴스는 이전에도 많았.. 더보기
왜 권력을 누리면 사람이 달라질까? : 권력에 대한 단상 왜 권력을 누리면 사람이 달라질까? : 권력에 대한 단상 “저 사람 안 그랬었는데 권력 맛을 보더니 달라졌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우리는 궁금하다는 듯 그렇게 말하긴 하지만, 사실 그 이유를 모르진 않는다. 권력이 있는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면 당장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진다. 무엇보다도 머리를 조아려가며 아쉬운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권력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 아무리 겸손했던 사람이라도 그런 사람들을 일일이 겸손하게 대하기는 어렵다. 좀 건방지고 거들먹거리는 태도를 갖는 것이 일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렇게 달라진 태도를 한동안 지속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태도가 몸에 배게 되고, 이는 오랜만에 만난 예전의 친지들을 대할 때에도 드러나기 .. 더보기
<손석춘 칼럼>자본의 갑질, 갑질의 언론 자본의 갑질, 갑질의 언론 ▲손석춘(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을까?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는 일은 이미 1987년 6월대항쟁으로 이뤘으니 30년을 넘었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민주주의에 살고 있는가에 선뜻 긍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듯싶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년을 맞았던 지난해는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 수준을 실감한 한 해였다. 그해 우리말 ‘갑질’은 외신에서도 영어표기 ‘Gapjil’로 보도될 정도로 화제였다. 갑질을 꼭 거창하게 여길 일은 아닐 터다. ‘일상의 파시즘’이란 말도 있듯이 갑질은 가족관계, 연인관계를 비롯해 일상생활에서도 무시로 저질러진다. 하지만 적어도 2018년에 드러난 갑질은 ‘갑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싶을 만큼 자본의 .. 더보기
<장호순 칼럼>포털의 지역언론 차별: 현실과 대안 포털의 지역언론 차별: 현실과 대안 장호순(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인터넷에 모든 것이 있고, 인터넷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디지털 시대가 되었지만, 유독 디지털 시대에 무시당하고 외면 받고 있는 것들이 있다. 바로 지역사회와 지역언론이다. 카톡이나 페이스북으로 가족이나 친구들과 수시로 소통하고, 다음과 네이버를 통해 국내외 뉴스를 실시간으로 입수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내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 관한 소식이나 뉴스는 거의 접하지 못하고 있다. 내 고장에서 대형 사고나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한 내 지역 소식이 인터넷에 등장하지 않는다. 첨단 디지털 시대라지만 등잔 밑이 어두운 봉건적 지역사회인 것이다. 지역사회를 디지털 황무지이자 식민지로 전락시킨 것은 포털사업자들이다. 한국처럼 대다수 국민.. 더보기
“페스티나 랑테(Festina lente)!” ‘페스티나 랑테(festina lente)!’ ‘천천히 서두르라’는 뜻의 라틴어 명언이다. 로마의 최초황제 아우구스투스(케사르 옥타비아누스)가 즐겨 쓰던 말이었다. 곧 좌우명이자 인생훈이었다. 그 새김은 모든 일에 성급함이란 금물이며 그렇다고 두손 놓고 태평세월하지 마라는 뜻이지 싶다. 지금도 여러 사람들에게 자주 사용된다. 요즘 식으로는 ‘천천히 그리고 빨리’가 된다. ‘천천히 서두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논리적 모순이다. 말 그것만으로는 앞뒤가 안 맞는다. 천천히 하면 서두를 수 없고, 서두르다 보면 천천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이 결합돼서 ‘천천히 서두른다’는 새로운 개념이 빚어졌다. 모순어법(oxymoron)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아마도 훌륭한 지도자상에 대해 많은 고민과 반성을 했던 인.. 더보기
<김창룡 칼럼>한반도 평화 찬물 끼얹는 보수언론, 두고만 볼 텐가? 한반도 평화 찬물 끼얹는 보수언론, 두고만 볼 텐가? 김창룡(인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I.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처음 만나던 날. 모든 국민은 숨죽이며 역사적 만남을 지켜봤다. 판문점을 사이에 두고 서로 오고가는 모습, 벤치에 둘만 앉아 여유롭게 담소를 나누는 장면, 또 다시 만난 두 사람이 형제처럼 껴안는 모습들...한반도 평화의 시대는 그렇게 갑자기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은 적대적 자세에서 한민족을 강조하며 화합과 평화를 강조하는 바뀐 모습으로 나타났다. 반신반의하던 남쪽의 언론과 국민은 연이어 벌어진 일련의 사건속에 기대감이 높아졌다.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사상처음 북미 정상회담을 열면서 한반도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하겠다’.. 더보기
과연 무엇이 지혜로운가 과연 무엇이 지혜로운가 -이강록 편집고문 ‘뽕나무와 거북을 삼가라’란 가르침이 있다. 이 무슨 소리인가. 바로 신상구(愼桑龜)란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아주 지극한 효성을 가진 아들에 관한 얘기다. 이 말에서는 교훈을 제대로 새겨야 한다. 곧 말조심을 하라는 것 또는 지나치게 잘난 척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쯤일 듯싶다. 알다시피 그 유래는 이렇다. 옛날 어느 마을에 아버지와 아들이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이가 많은 데다 병이 깊어 생을 마칠 날만을 꼽는 처지였다. 그러나 아들은 하늘을 감읍시킬 만큼 효성이 지극했다. 아들은 백방으로 용하다는 의원들을 찾아다니면서 약방문을 찾았다. 어떤 용한 의원이 아버지의 병에는 커다란 거북을 삶아서 그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아들은 거북을 찾기 위해 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