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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강록 칼럼

“페스티나 랑테(Festina lente)!”

페스티나 랑테(festina lente)!’ 

천천히 서두르라는 뜻의 라틴어 명언이다. 로마의 최초황제 아우구스투스(케사르 옥타비아누스)가 즐겨 쓰던 말이었다. 곧 좌우명이자 인생훈이었다. 그 새김은 모든 일에 성급함이란 금물이며 그렇다고 두손 놓고 태평세월하지 마라는 뜻이지 싶다.

 

지금도 여러 사람들에게 자주 사용된다. 요즘 식으로는 천천히 그리고 빨리가 된다. ‘천천히 서두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논리적 모순이다. 말 그것만으로는 앞뒤가 안 맞는다. 천천히 하면 서두를 수 없고, 서두르다 보면 천천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이 결합돼서 천천히 서두른다는 새로운 개념이 빚어졌다. 모순어법(oxymoron)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아마도 훌륭한 지도자상에 대해 많은 고민과 반성을 했던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뛰어난 지도자가 되려면 성급함은 금물이라고 여겼다. 때문에 그걸 경계하는 뜻에서 이 말을 자주 사용했다. 로마 역사학자 수에토니우스의 해석에 따른다면 그렇다. 이런 아우구스투스를 위해 주조된 금화 뒷면에 이 말을 상징하는 게와 나비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게나 나비 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게나 나비가 민첩하고 재빠르게 움직이는 동물은 아니다. 뭔가 꾸물꾸물 느리게, 그러나 늘상 이리저리 움직인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주변사람들이 아우구스투스를 황제로서 깨어있도록 주목시키기 위한 동물로 삼은 것 아닐까 한다.

 

천천히 가는 사람은 실수 없이 간다

 

옥타비아누스가 이런 생각에 마음을 쏟았던 이유는 뭔가. 그는 휘하 장군들에게 조급하게 훈련을 시키기보다는 서두르지 않고 강하게 훈련을 시키는 장군이 되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언제나 장군들에게 천천히 서두르라고 훈시했다. 왜 그랬을까


대담하고 성급하기보다 안전하고 강한 사령관이 일을 더 잘해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 아닐까. 그는 공화정이던 로마를 제정으로 바꿔놓은, 로마제국의 첫 번째 황제였다. 사실 생전에 그는 절대로 스스로를 '황제'라고 부르지 않고 '1 시민'이라고 불렀다. 진정으로 로마시민에 겸손했는지 통치기법상 그랬는지는 역사가 평가하겠지만 말이다.

 

페스티나 랑테! 여기서 그 의미를 잠자코 음미해보자. 고요하면서도 묵중한 가르침이 새겨지지 않는가. 참으로 명언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듯 어떤 행동이든지 서두르다 보면 실수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니 일이 그릇됨이 없도록 찬찬히 균형과 중심을 잡으라는 말이겠다. 지나치게 무리하면서 서두르면 실수가 생기고 장기적으로 볼 때도 결코 긍정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삶을 살아가며 인간사를 깊게 느낀 이들의 지혜가 만든 명언들은 많다. 그 중 하나가 천천히 서두르라이다. ‘천천히 가는 사람은 실수 없이 간다. 실수 없이 가는 사람은 멀리 간다.’ 라는 이탈리아 속담도 같은 맥락이다. 인간의 삶이란 짧은 듯해도 일생이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긴 안목으로 멀리 보는 삶은 그래서 주목받는다.

 

이런 멋진 격언들이 어찌하여 부각됐겠는가. 그만큼 많은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 아닐까. 예부터 전해오던 이런 명언들을 새겨보면 예전의 문제와 해결 방법론들의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방식이나 지혜는 모두 같구나 하고 공감한다. 그래서 숱한 삶 속에서 얻은 지혜와 교훈은 격언이나 명언으로 남아 우리를 일깨워 준다.

 

뽕잎이 비단이 되려면 인내가 필요


 

이제 우리는 시간과 인내가 뽕잎을 비단으로 만든다는 잠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인내는 힘이다. 시간과 인내는 뽕잎을 비단으로 만든다.

 

아무리 비단이 좋다 한들 뽕나무를 키워서 누에를 기르고 네 번의 잠을 재워 고치를 얻고 명주실을 뽑지 않으면 비단의 아름다움은 얻을 수 없다. 뽕잎이 없어도 안되고 누에치기의 노력과 오랜 기다림이 없어도 뜻을 이루기 어렵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뭐라 해도 시간을 기다리는 인내이다. 그런데 조급함으로 서두른다면 무엇을 얻겠는가.

 

목적지로 가는 길에 도사리고 있는 두 번째 함정은 서두름이다. 무슨 일이든지 서둘러 하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는 없다. 현대인은 점점 속도가 빨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옛날에는 밥을 한번 하려면 장작불 피우고 쌀을 씻어 밥이 되기까지 한 시간 이상 걸렸다. 그러나 지금은 1분이면 즉석밥을 먹는다. 그렇다고 해서 일처리에서조차 서둘러서는 내실있는 성과를 얻기 어렵다.

 

중국에 가면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만만디(천천히)’라는 말이다. 반면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가장 먼저 익히는 말이 빨리빨리. 심지어 외국인들은 우리 한국 사람을 미스터 빨리빨리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중국인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그야말로 만만디이다. 만만디라는 말이 나오게 된 유래가 재미있다. 양자강 상류에서 배를 타고 하류로 내려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배에 오리알을 싣고 유유히 유람을 하면서 강을 따라 내려갔다. 그런데 유람을 하는 사이에 오리알에서 새끼가 태어났다. 배에서 부화된 오리 새끼는 배 위에서 자라나 어미오리가 되어 또 알을 낳았다


그 오리 알이 오리 새끼가 되고, 또 자라서 어미 오리가 되고, , 새끼오리, 어미오리이렇게 반복했다. 배가 양자강 하류에 도착을 했을 때는 배 안에 오리가 가득하게 됐다. 그는 오리와 알을 모두 팔고 다른 물건들을 샀다. 그리고 또 다시 양자강을 유람하면서 상류로 올라왔다. 이런 식으로 양자강을 세 번 왕복하자 그의 일생이 끝이 났다. 바로 이 사람 이름이 '만만디' 였다. 여기에서 만만디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중국인의 여유와 느긋함을 보여주는 일화다.

 

그런데 한국인은 이와 정반대다. 너무나 조급하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달라는 식으로 급하기 짝이 없다.

 

성마른 판단은 일을 그르친다


잠시 알렉산더 대왕 얘기로 넘어가자, 대왕은 친한 친구로부터 귀한 선물을 받았다. 바로 잘 훈련된 사냥개 두 마리였다. 알렉산더는 사냥을 즐겼던지라 매우 기뻐했다. 어느 날 왕은 사냥개를 데리고 토끼사냥에 나섰다. 그런데 개들은 사냥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 했다. 달아나는 토끼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빈둥빈둥 누워 있었다


왕은 화가 나서 사냥개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그리고는 사냥개를 선물한 친구를 불러 호통을 쳤다. “토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개들을 왜 내게 선물했는가? 그 쓸모없는 사냥개들은 내가 모두 죽여 버렸네!” 친구는 대왕의 말을 듣고 매우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대왕이시여, 그 사냥개들은 토끼를 잡기 위해 훈련된 개들이 아닙니다. 호랑이와 사자를 사냥하기 위해 오랜 시간 훈련받은 값비싼 개들입니다.”

 

친구의 말을 듣고 알렉산더 대왕은 땅을 치며 후회했다. 천하의 알렉산더도 이건 매우 성급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성급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말한다. 성급하게 일을 처리하면 실수를 하고, 따라서 후회를 하게 된다. 그러므로 시간을 두고 신중히 생각하여 일을 결정하고 처리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불교의 선문집 벽암록(碧巖錄)에는 줄탁동기(啐啄同機)’란 화두가 나온다. 닭은 병아리를 부화하기 위해 알을 품는다. 때가 되면 병아리가 알 안에서 껍질을 톡톡 쪼게 되는 것을 줄(), 그 소리를 듣고 밖에 있던 어미닭이 밖에서 동조해 껍질을 쪼아주는 것을 탁()이라고 한다. 이 두 행위가 같은 시점에 일어나야 병아리가 비로소 알에서 나올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아직 때가 이르지도 않았는데 어미닭이 밖에서 쪼게 되면 병아리는 아직 채 제대로 부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죽고 만다. 때가 되어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고 해도 어미닭의 도움이 없으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이 쉽지 않다. 이처럼 알을 깨고 나오는 부화에도 모두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런 때를 못 맞추면 일은 그르치게 된다. 병아리가 할 때를 기다리는 어미 닭의 기다림과 인내가 그만큼 중요한 요체다.

 

아무리 급하다고 이삭을 뽑아 올려서야

 

맹자가 제자들에게 열심히 수양하라고 권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어리석은 농부가 살았다. 그 농부가 어느 날 자기 논에 나가 보니 논의 벼키가 다른 논의 벼보다 작았다. 고민 끝에 농부는 자기 논의 벼 줄기를 일일이 뽑아 올려놓았다. 노인은 만족한 듯이 집에 돌아와 말했다. "오늘은 참 피곤하구나. 벼의 싹을 뽑아 올려놓고 왔더니만

 

농부는 아내에게 벼의 늦게 자라서 싹을 뽑아 놓았다고 말했다. 깜작 놀란 아내가 다음 날 논으로 달려갔다. 모든 벼는 이미 다 말라 죽어 있었다.

 

이게 바로 알묘조장(揠苗助長)’이다. 줄여서 조장이라고 한다. 벼 이삭은 시간이 지나면 자라게 돼 있다. 그동안 김을 매주고 물을 잘 대주면 스스로 자란다. 이것을 공연히 조바심을 내서 서두르다 보면 오히려 농사를 망친다.

 

공자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욕속즉부달(欲速則不達)’이다. “너무 빨리 가려다 오히려 이르지 못한다라는 뜻이다. 공자의 제자 자하가 거부라는 고을 태수가 되자 스승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정치를 잘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공자가 타일렀다. "빨리 하려고 서둘지 말고 작은 이익을 꾀하지 말라. '빨리 하려 하면 일이 잘되지 않고' 작은 이익에 구애되면 큰 일이 이루어지지 않느니라."

 

정책의 실효가 빨리 나타나기를 안달하지 말고 원대한 계획을 세웠으면 눈앞의 작은 이익을 노리지 말라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빨리 성과가 나타나 나쁠 건 없지만 전후좌우를 살피지 않고 빠르기만 추구한다면 부실하거나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말이다. 속담에도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빨리 서두르면 도리어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 아무리 바느질이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 쓸 수는 없는 법이다.

 

서두르면 성공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에 눈을 팔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 대어(大魚)를 낚으려는 낚시꾼 일수록 기다림이 익숙하고, 먼 길을 떠나는 나그네일수록 서둘러 신발 끈을 매지 않는다.

 

지식은 쌓아지는 것이고, 지혜는 깨닫는 것이다. 지식은 사람의 경험이 근원이기에 익힌 자의 결과를 중요시 한다. 그러나 지혜는 진리가 근원이기에 알지만 깨달아야 한다. 결과가 눈에 쉽게 보이지 않는다. 기업이나 조직, 한 나라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무엇이라는 것은 누구나 지식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은 지혜이기에 누구나 이룩할 수는 없다.

 

빠른 개혁 보다 바른 개혁 이뤄야

 


지금 한반도는 격랑에 휩싸여 있다. 만약 한참 진행 중인 비핵화 협상이 실패한다면 한반도의 운명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보고 싶은 현실만 보는 대부분의 사람과 달리 책임있는 지도자는 보고 싶지 않은 현실까지도 직시해야 한다.

 

또한 운명과 상황이 달라지면 그에 맞게 적절히 변화하는 임기응변으로 대처해야 한다. 부디 한미정상이 북한의 상황변화에 맞는 현명한 대책을 마련하여 한반도에 '핵 없는 평화'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혹여 비핵화라는 열망을 지나치게 갈망한 나머지 앞뒤 헤아림도 없이 허겁지겁 협상타결만을 서두른다면 생각지도 못한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시간을 재촉함 없이 조목조목 짚고 따지면서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요즘 우리나라의 법체계가 거의 무너진 상태로 복원조차 힘든 상태인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지난 시절 BBK특검은 물론이고 일개 정무수석의 손에 놀아난 대법원장이라는 작자의 행태 또한 있을 수 없는 범죄행위였다. 뿐만 아니라 지난 시절 독재정권에 아부하느라 거짓 수사와 허위판결을 일삼은 자들이 출세가도를 달리며 여전히 중책을 맡고 우리사회를 주름잡고 있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정치 경제 외교 모든 게 힘든 상황이다. 소위 과거 정권들이 저질러 놓은 온갖 적폐를 쓸어내고 새로운 미래를 꾸려가려면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럴수록 천천히 하나씩 다지면서 나아갈 때다. 급하게 서둘지 말고 조바심이 나더라도 조금 더 참고 기다리며 철저하고 꼼꼼하게 청소해야 한다. 그러니만큼 천천히 서두르자는 주장이 딱 들어맞는다.

 

시중에 무식은 중세병이고 속단은 현대병이라는 말이 퍼져있다. 정보의 시대에 무식해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고 속단 즉, 빠른 판단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시대에 생존기술이기도 하다. 속도감은 생리적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인 감각이다. 지난날 세계가 시속 60km 정도로 움직였다고 한다면, 오늘날 세계는 그 열 배의 속도로 움직인다


100년 전 사람들은 시속 30km에도 어지럼증을 느꼈지만, 현대인들은 그 속도에 짜증을 낸다. 남보다 먼저 판단하고 남보다 먼저 움직여야 성공할 수 있다는 건 현대의 상식이다. 그렇게들 살다 보니 기다림은 곧 짜증을 유발하는 행위가 돼버렸다. 속단의 짝이 조급증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반 정도 지나니, 여기저기에서 개혁 속도가 더디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막상 개혁의 방향과 청사진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하다. 수십, 수백 년 묵은 적폐를 5년이나 2~3년만에 청산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국민은 5년 내에 모든 적폐를 청산하라고 요구하고, 정부는 그 중 5년 내에 마무리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정말 중요한 장기 개혁 과제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현재 정치여건 아래서는 10년짜리 개혁 과제를 고민하는 것도 도에 넘치는 오버라는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랜 시간이 필요한 개혁을 포기할 수도 없다. 당장 눈앞의 효과만을 노릴 것이 아니라 정부가 실현가능한 계획을 만들고 성실하게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 더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음 정부까지 가더라도 그 개혁안을 실천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빠른 개혁에 마음을 빼앗겨 바른 개혁이 무산돼서는 안된다. 천천히 서두를 과제다.

 

나팔꽃의 개화생리가 바로 세상의 원리



나팔꽃은 먼동이 틀 때 피어나는 꽃이다. 어둠이 가고 햇살이 돋아오를 때 피는 꽃은 낮이면 시들어 버린다. 그러나 요즈음 이런 상식을 뒤엎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 식물학자가 나팔꽃을 연구했다. 24시간 빛을 쬐게 했다. 아예 어둠을 박탈한 것이다. 그랬더니 나팔꽃은 피지 않았다. 나팔꽃을 피게 하는 것은 빛이 아니라 어두움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 어느 정도의 어둠과 추위가 나팔꽃을 피게 했다는 사실이다. 이 나팔꽃의 개화생리가 바로 온 세상의 원리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일하는 낮만 아니라 잠자는 밤도 필요하다. 일손을 놓고 일을 잊어버리는 밤도 있어야 한다.

 

예술작품의 경우에도 그런 경우가 많다. 얼개와 밑그림을 차분히 준비하지 않으면 원하는 멋진 작품을 얻기란 기대난이다. 꼼꼼히 준비하지 않으면 작업을 진행하다 덧칠하고 개칠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때는 차라리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만 못하다.

 

서두르면 실패한다. 서두른다고 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서두르면 실수하기 쉽다. 서두름은 땀 흘리는 과정을 밟지 않고 살려는 편의주의이다. 서두름은 기다림을 모르는 조급함이다. ‘천천히 빨리라는 말이 있다. 서두름은 성취를 얻는데 함정이다.

 

자제하고 기다리며,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 바로 호시우행(虎視牛行)’의 자세다. 호랑이의 눈빛을 간직한 채 소 걸음으로 간다. 늘 예리하게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행동은 소처럼 끈기 있게 하는 모습이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고 했다. 아무리 밥이 좋은 것이라 한들 체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비핵화도 적폐 청산도 정치개혁도 경제살리기도 모두 마찬가지다. 조바심 나더라도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천천히 서두르라” 

이 말의 속마음도 천천히 서둘러 새겨졌길 바란다. 정부에게 하는 말이지만 모든 독자들에게도 전해드리고자 한다. /이강록 편집고문 

※<사람과 언론> 제2호(2018 가을)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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