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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외부 칼럼

<손석춘 칼럼>자본의 갑질, 갑질의 언론

<손석춘 칼럼>자본의 갑질, 갑질의 언론

 

                 ▲손석춘(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을까?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는 일은 이미 19876월대항쟁으로 이뤘으니 30년을 넘었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민주주의에 살고 있는가에 선뜻 긍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듯싶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년을 맞았던 지난해는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 수준을 실감한 한 해였다. 그해 우리말 갑질은 외신에서도 영어표기 ‘Gapjil’로 보도될 정도로 화제였다. 갑질을 꼭 거창하게 여길 일은 아닐 터다. ‘일상의 파시즘이란 말도 있듯이 갑질은 가족관계, 연인관계를 비롯해 일상생활에서도 무시로 저질러진다.

 

하지만 적어도 2018년에 드러난 갑질은 갑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싶을 만큼 자본의 갑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찬찬히 짚어보자.

 

갑질 일상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들먹이기도 민망할 정도

 

자본의 갑질이 사회적 문제점으로 불거진 것은 2018년 봄 대한항공 전무 조현민의 이른바 물벼락 갑질이다. 서른다섯 살 조현민은 316일 대한항공 본사에서 광고업체 팀장에게 괴성을 지르며 유리컵을 던지고 종이컵에 든 매실 음료를 참석자들에게 뿌려댔다.

 

조현민은 땅콩 회항으로 공분을 일으킨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의 동생이다. 곧이어 두 자매의 어머니 영상이 온라인에 공개됐다. 회장 조양호의 아내이자 일우재단 이사장인 이명희는 호텔 증축 공사장에 등장해 폭언과 손찌검을 했고, 자택 개축공사 노동인들에게도 욕을 하며 폭행했다. 곧이어 대웅제약 회장 윤재승이 정신병자 XX 아니야. 이거? . XX. 왜 그렇게 일을 해. XX. 미친 XX라며 욕설을 내뱉는 녹취록이 공개됐다. 그는 창업주의 2세로 검사를 하다가 대웅제약의 최고 경영자에 올랐다.

 

기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자본의 갑질은 대한항공이나 대웅제약만이 아니다. 2017111일 노동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이 연대한 직장 갑질 119’가 문을 열자 6개월 만에 11938건의 갑질제보가 접수됐다. 하루 평균 66건 꼴이다. 그동안 일터에서 얼마나 많은 갑질이 있었는지 단적으로 드러내준 통계다. 사실 그 통계 앞에 가장 성찰해야 할 주체는 언론이다. 언론이 경제 권력을 감시하지 못해 빚어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물론, 언론이 모르쇠만 놓아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건이 공분을 살 때에 잠깐 일회성으로 보도하는데 그쳤다. 바로 그래서 자본의 갑질은 불쑥 튀어나왔다가 망각되기 일쑤였다. SK그룹 회장 최태원의 사촌 아우 최철원이 고용인을 야구방망이로 실컷 두들겨 팬 야만도, 현대그룹 정주영의 손자 정일선 현대BNG스틸 사장이 운전기사를 평균 18일 꼴로 교체한 갑질도 어느새 망각 되었다.

 

대림산업 부회장 이해욱이 운전기사를 상습적으로 폭언·폭행한 일도 마찬가지다. 해고된 운전기사가 가장 속상했던 건 사람을 종이컵보다 더 쉽게 버린다고 한 말도 잊혀졌다. 이해욱은 기사가 일하는 상태에서도 예비기사를 늘 모집했고 예비기사가 마음에 들면 사전 통보 없이 바로 잘랐다. 주목할 것은 그들이 습관성으로 갑질을 일상화 했으면서도 버젓이 거짓말을 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들먹이기도 민망할 정도다.

 

이명희에게 당했다는 피해자가 경찰조사에서10여명 넘게 나왔다. 그녀는 한진그룹 계열사 전·현직 임직원과 운전기사, 가사도우미 들에게 무시로 폭언과 폭행을 했다. 끝까지 이명희는 법망을 의식해 욕은 했지만 때린 적은 없다고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곧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수행기사가 제보한 영상에서 이명희는 거침없이 제대로 해. 이 개XX. 전화해서 제대로 말해라며 고성을 질러댄다. 수행기사는 이명희의 폭행은 하루에 한 번이 될 수도 있고 이틀에 한 번이 될 수도 있었다. 얼굴에 침을 뱉기도 했고 아랫사람들은 사람 대접을 받기 어려웠다고 진저리를 쳤다.

 

대웅제약 윤재승은 네티즌의 비판 여론이 빗발치자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면서도 상습적인 욕설이나 폭언은 없었으며 폭언을 견디지 못해 회사를 그만둔 사람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윤 회장의 언어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한 사람이 최근 2~3년에 100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국민을 우롱하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대한민국 1등 신문자처하는 <조선일보> 사주 손녀 녹취록 충격

 

언론이 노사관계를 언제나 자본편향으로 보도해오면서 자본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왔다. 언론의 책임은 비단 저널리즘에 머물지 않는다. ‘드라마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텔레비전 황금시간대는 모두 연속극이 차지하고 있다. 대다수 드라마가 대기업 회장과 돈 많은 사람들을 미화하거나 선망케 한다. 하지만 호감을 주는 탤런트가 연기하는 재벌 2세나 3세들의 언행은 현실과는 큰 거리가 있다.

 

우리 헌법은 자본의 갑질에 대항할 단체를 명문화해놓고 있다. 노동조합이다. 실제로 선정적인 장기자랑을 강요하고 임금체불에 초과근로를 강제해온 한림성심병원의 갑질에 맞서 간호사들은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문제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종합일간지와 경제지들이 틈만 나면 노동조합을 마녀 사냥하는데 있다. 바로 그래서 민주노총을 기득권 집단으로 몰아가는데 앞장선 <조선일보> 자본의 실체가 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은 상징적이다.

 

방상훈 회장의 아들인 방정오 TV조선 대표이사의 어린 딸이 50대 후반인 운전기사에게 반말은 물론 폭언과 욕설, 해고 협박을 했다. 음성파일에 나타난 초등 3학년의 말은 섬뜩하다.

 

이 아저씨가 보니까 괴물인가, 바본가아저씨. 나는 이제 아저씨랑 생활 안 할래. 내려줘. 당장 내려줘아저씨는 해고야. 진짜 미쳤나봐내가 지는 사람 아니야. 아저씨. 나 말싸움해서 1등한 사람이야. 나 아저씨 때문에 더 나빠지기 싫거든? 나 원래 착한 사람이었는데 아저씨 때문에 이렇게 나빠지기 싫어그 전 아저씨한테도 그랬지만 너무 못해서, 아저씨가 더 못해. 그 아저씨가 그나마 너보단 더 나은 거 같아일단은 잘못된 게 네 엄마, 아빠가 널 교육을 잘못시키고 이상했던 거야.”

 

<조선일보> 손녀 녹취록을 공개한 운전기사는 인터뷰에서 나는 운전기사가 아니라 머슴이었다며 딸이 자신을 때리고 귀에 소리를 질렀고, 운전 중에 핸들까지 꺾었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1등 신문을 자처하는 언론사의 논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사주 집안의 어린 딸이 보여준 의식은 흔히 거론하는 재벌의 행태와 전혀 다를 바 없을 뿐더러 한 술 더 뜬다. 녹취록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조선일보>쪽의 반응도 놀랍다. 딸이 미성년자라며 법적 절차를 운운했다. 하지만 네티즌의 여론이 들끓자 결국 사과문을 냈다.

 

갑질, 헌법 제1조에 대한 심각한 훼손

 

<조선일보> 자본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민주노총을 마녀사냥하며 갑질을 벌이고, 자기 집 어린 딸을 수행하는 운전기사 노동인에게도 갑질을 해온 셈이다. 자본의 갑질과 갑질의 언론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하지만 어떤가. ‘물벼락 갑질로 큰 논란을 일으킨 조현민에 대해 대한민국 검찰은 시간을 끌다가 결국 무혐의 처분했다. 폭행 혐의와 관련해 피해자 두 명이 모두 처벌을 원하지 않아 공소권이 없단다.

 

그나마 비정규직 20대 김용균의 참혹한 죽음으로 여론의 압박이 겹쳐지면서 국회는 201812월 말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법을 개정했으나 자유한국당의 방해로 누더기 법안이 되어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새삼스런 말이지만 민주주의는 한낱 선거제도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1항에서 밝히고 있듯이 민주공화국이다. 그 의미는 곧바로 항에서 서술했듯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여기서 유의할 대목은 권력이나 정치권력이라 하지 않고 모든 권력이라고 명문화한 점이다.

 

정치권력만이 아니라 경제와 사회, 문화에 이르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권력은 국민으로 나온다는 뜻이다. 따라서 갑질이란 헌법 제1조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다.

 

갑질을 사실상 두남두며 되레 노동운동에 갑질을 벌이고 있는 언론권력에 ‘21세기 민중인 네티즌이 적극 맞서야 한다. 더는 미루지 말고 2019년을 자본의 갑질에 근본적 대책을 세워 가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할 때다.  

/위 글은 <사람과 언론> 제4호(2019년 봄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