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의 시대, 교육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이현(전교조 참교육연구소 소장)
대전환기 : 두 가지 근본적인 변화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두 가지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선 해방이후, 남한에서 주류로 군림해왔던 수구적 보수 세력이 결정적으로 와해되고 있다. 그들은 일제 강점기에는 주로 친일세력이었으며, 해방 이후 분단 상황에서 반공-반북-친미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정치적 주도권을 행사하였으며, 박정희 집권 시절에는 영남패권주의에 기초한 지역주의와 경제적 성장주의를 내세워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자유주의 정치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준 적은 있지만, 한국사회에서 주류 세력으로서의 위상을 상실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박근혜, 이명박 두 명의 전 대통령들이 탄핵되거나 구속되면서 심각한 타격을 입었으며, 지난 지방선거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맛보았다. 지난 선거에서 수구 보수세력은 영남중에서도 대구-경북에서만 근소한 승리를 거두었으며, 나머지 모든 지역에 완패하였다. 특히 그들이 젊은 세대에게 전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수구 보수 세력의 중심적인 지지층은 일부 노인세대와 지역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보수적인 대구 경북 지역주민들이다.
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왔던 반공-반북주의, 지역주의, 성장신화 등 낡은 이념들은 합리성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에게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 반면, 이명박-박근혜 집권 시기에 드러난 비리, 무능, 무책임, 사욕 비합리성 등은 수구 보수세력을 상징하는 핵심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그들이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겠지만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쉽지 않을 것이며, 대대적인 변신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남한 내에서의 주류 정치세력의 교체와 더불어 남북관계에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전에도 남북정상회담, 6자회담 등 한반도의 냉전적 대결을 해체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지금의 남북정세는 이전의 남북정세와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 남북과 북미 간의 최고 수준의 회담(정상회담)이 동시적으로 진행되면서, 일시적 합의와 파기를 반복하던 이전과 다르게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근본적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북한이 핵무장 인정을 전제로 한 협상에서 벗어나 비핵화까지 수용할 의사를 표명하면서 핵문제 해결을 넘어 한반도의 냉전적 질서를 근본적으로 해체하는 수준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해방 이후 70년 넘게 지속되어온 냉전적 대결구도가 해체되고 평화체제가 정착된다면, 남북 화해와 협력 나아가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의 해결은 물론 남한 사회 자체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치안과 안보 프레임이 약화되면서 민주주의가 심화되고 사회 각 분야의 자유도 확대될 것이다. 반공과 안보를 명분 삼아 사회개혁을 위한 실천에 가해졌던 공격도 약화될 것이다. 각 분야의 남북교류를 통해 남북 간의 경험과 문화, 사상 등이 교류되면서 새로운 사회,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상상력도 활성화될 것이다. 반면에 반북-반공 이데올로기에 의지해온 수구 세력들은 더욱 고립될 것이다.
사회개혁과 교육개혁
수구세력의 몰락과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이라는 대전환이 단순히 정치적 주류 세력의 교체와 민족 문제의 해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1997년 IMF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행한 결과 삶의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사회 불평등이 심화되고, 과도한 생존 경쟁이 일상화되면서 대다수의 사회구성원들이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다. 불행과 절망이 사회 구석구석에 넘쳐나고 있다.
수구 세력의 몰락과 남북관계의 변화로 촉발된 대전환은 한국사회의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 개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만약 사회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다면 남북관계의 변화에 대한 기대와 환호는 실망과 환멸로 바뀔 수 있다. 이러한 대전환이 소리만 요란할 뿐 자신의 삶의 변화와 커다란 관계가 없음을 확인할 때, 사회구성원들의 절망은 더욱 커지고, 이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격화되고 사회 해체가 가속화될 위험이 있다.
사회개혁의 핵심 과제는 명확하다. 생존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불안정 노동과 실업문제를 해결하고, 보편적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 과도한 경쟁과 시장논리보다는 사회적 연대에 기초한 사회제도와 사회관계를 확충해 나가야 한다. 대의제와 관료제가 결합한 엘리트 중심의 지배를 넘어서기 위해 직접- 참여- 숙의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실험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교육개혁의 과제도 사회개혁의 과제와 유사하다. 최근에 4차 산업 혁명 담론이 유행하면서 미래교육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 교육의 중요한 임무가 미래세대를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이 미래의 변화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 담론을 중심으로 교육개혁의 과제를 설정하기에는 현재의 교육문제가 너무 심각하다.
한국 교육은 오랫동안 입시경쟁의 지배를 받아 왔다. 모든 교육의 가치가 입시경쟁에서 승리로 수렴되고 있다. 교육 본연의 가치인 학생들의 성장과 발달, 민주시민의 양성은 뒷전이다. 학생들은 학교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매우 경쟁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거나, 일찍부터 패배와 절망을 맛보면서 무기력한 인간이 된다. 배움의 즐거움을 맛보고, 성장의 기쁨을 느끼고, 동료와의 협력의 소중함을 경험하지 못한다. 입시경쟁이 지배하는 교육 현실에서는 아무리 좋은 제도나 정책를 도입해도, 결국은 입시경쟁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미래 교육의 멋진 청사진을 제출하기 이전에 입시중심의 교육을 해체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 교육의 또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은 권력의 과도한 중앙 집중과 관료들의 권한 독점이다. 좋은 교육은 일방적인 지시나 기계적인 역할 분담으로 가능하지 않다. 학교와 학생들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교육활동은 섬세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획일적인 매뉴얼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교사들에게는 높은 자율성과 전문성, 윤리적 책임성 등이 요구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국가나 지방정부는 교육의 커다란 방향과 원칙만을 제시하고, 학교에 높은 자율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체제는 모든 결정 권한을 교육부와 교육청의 관료들이 독점하고 세부적인 사항까지 각종 규정과 지침, 공문을 이용하여 학교에 지시한다. 학교는 상부의 지시를 이행하는 것만으로도 힘겹다. 학교와 학생들의 구체적인 상황과 여건을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가장 적합한 교육과정을 기획하고, 이를 위해 교직원들이 얼굴을 맞대고 고민하고 논의할 여유도 필요도 없게 된다. 교사들의 자발적인 열정과 책임감은 약화되고 상부의 지시를 수동적으로 수행하는 관행이 학교문화로 정착된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권한을 학교로 대폭 이양해야 한다. 교장도 더 이상 상부기관의 명령을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감시하는 역할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장은 학교구성원들의 민주적 논의와 참여를 이끌어내고, 다양한 교육활동을 지원해주는 조정자와 지원자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세계 유일의 점수형 교장 승진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나아가 학교자치 기구의 활성화를 통해 학교현장의 자율성을 높이고 교육주체들의 집단적 협력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입시중심 교육 해소하고, 권위적인 관료지배 구조 해체해야
입시중심 교육을 해소하고, 권위적인 관료지배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는 아래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교육을 고민해온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도 대략적인 합의가 존재한다. 수능절대평가 전환, 대학통합체제 구축, 대입자격고사 도입, 교장공모제와 선출보직제 도입, 교무회의 의결기구화, 학생회와 학부모회 법제화 등등.. 대안이 존재함에도 교육개혁이 계속 지연되는 이유는 개혁을 추진할 주체 동력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료 등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억누르고, 교육을 사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는 사회적 관행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개혁 동력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여소야대의 불리한 조건에서 출범하게 되면서 집권 초기에 매우 조심스런 행보로 일관하였다. 그러나 집권 여당은 지방선거에서 압승하였으며, 개혁에 반대할 수구세력들은 계속 힘이 빠지고 있다.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도 진보교육감이 압승하였다. 교육개혁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교육개혁에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최근의 대입제도 개편 과정은 정부의 책임을 여론에 떠넘기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교장공모제의 확대도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 밀려 후퇴하였다. 여전히 교육정책에 대한 주도권을 관료들이 가지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모든 후보들이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공약으로 내건 이유는 관료 주도성을 해체하기 위해서이다.
관료들이 정책을 주도하는 한, 커다란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교육위원회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설치된 국가교육회의는 교육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여건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다. 교사를 교육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교육개혁의 주체로 세울 때, 교육개혁이 성공할 수 있음을 세계의 모든 교육개혁의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교육개혁의 강력한 파트너가 되어야할 전교조를 계속 법외노조 상태로 방치하면서 소모적인 갈등만 키우고 있다.
교육개혁은 사회개혁의 중요한 토대이다. 교육을 통해 건강한 사회적 주체를 키워낼 수 있을 때, 건강한 사회가 가능해진다. 문재인 정부는 교육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을 세우고 적극적인 의지를 가져야 한다. 관료와 전문가가 아니라 현장교사들, 학부모, 학생들을 교육개혁의 주체로 세울 수 있어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를 긴급하게 설치하여 관료 주도성을 해체하고 현장 교육주체들의 민주적 참여와 논의를 통해 교육개혁의 종합적인 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현장의 개혁적 교사들을 대표하고 있는 전교조의 역할과 책임도 중요하다.
교육개혁을 위한 현장성이 높은 방안을 제출해야 한다. 교사, 학부모, 학생, 학교, 지역사회 사이의 활발한 소통과 협력의 물결을 확장해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학교현장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교육실천들과 실험을 전개해 나가면서 학교혁신을 위한 토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교육부문에서는 수구세력의 몰락과 냉전해체라는 전반적인 변화와 더불어 진보교육감의 압도적인 진출이라는 특수한 상황까지 맞물리면서 교육개혁을 위한 최상의 조건이 형성되고 있다. 성공적인 교육개혁을 통해 사회개혁의 튼튼한 기반이 마련되기를 간절하게 기대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대전환은 반드시 교육개혁과 사회개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 이 글은 <사람과 언론> 제2호(2018년 가을)에 실린 글입니다.
'특별기획 > 특별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변호사의 체험을 통해 본 한국의 민주화 (0) | 2020.09.06 |
---|---|
"촛불시민혁명, 아직 끝나지 않았다" (1) | 2019.03.06 |
지역민은 왜 지역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가? (1) | 2019.01.09 |
그대가사람을잇고 언로를트는큰일꾼이어라 (0) | 2018.08.20 |
동학농민혁명, 이제는 우리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으로 놔줘야 (0) | 2018.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