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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시평

<시평>‘세움’의 물리학, 사회학, 심리학에 관한 보고서

<시평(詩評)>

 

 

세움의 물리학, 사회학, 심리학에 관한 보고서

 

양병호(시인, 전북대 국문과 교수)

  

 

뻘에 말뚝을 박으려면

긴 정치망 말이나 김 말도

짧은 새우 그물 말이나 큰 말 잡아 줄 호롱 말도

말뚝을 잡고 손으로 또는 발로

좌우로 또는 앞뒤로 흔들어야 한다


힘으로 내리 박는 것이 아니라

흔들다보면 뻘이 물러지고 물기에 젖어

뻘이 말뚝을 품어 제 몸으로 빨아들일 때까지

좌우로 또는 앞뒤로 열심히 흔들어야 한다


뻘이 말뚝을 빨아들여 점점 빨리 깊이 빨아주어

정말 외설스럽다는 느낌이 올 때까지

수평이 수직을 세워

그물 가지를 걸고

물고기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 상상을 하며

좌우로 또는 앞뒤로

흔들며 지그시 눌러주기만 하면 된다

함민복, 뻘에 말뚝 박는 법전문

 


세움의 행위는 대체로 상부를 지향합니다. 하늘을 지향하는 거죠. 고대로부터 인간은 하늘을 신성시하고 우러러 왔습니다. 나아가 하늘/신성을 숭배함과 동시에 도달하고자 열망했습니다. 지상의 짐승으로부터 탈피하여 하늘의 신성을 획득코자 한 것이죠. 성경의 바벨탑이 하나의 징표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모든 종교 단체의 상징은 거의 대체로 하늘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하늘을 향한 이 세움의 행위는 동일화의 열망으로 혹은 금기에 대한 도전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율배반적 상황이 인간의 조건인지도 모르지만요. 하여튼 인류는 이 세움의 행위를 통해 신성에 도달하고, 신성과 소통하고, 신성과의 동일화를 꿈꾸어 왔습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도 이 세움은 다양한 의미 스펙트럼을 보여줍니다. 물리학적 관점에서 세움은 중력의 법칙에 대한 거역이자 도전일 수 있습니다. ‘세움은 중력을 이기기 위해 상부로 올라갈수록 뾰족해져야 합니다. 그 뾰족함은 지향성과 공격성을 동시에 함의하고 있습니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세움은 건설이자 파괴이며, 문명이자 야만이며, 지표이자 우상일 수 있습니다.

 

인류는 세움의 행위를 통해 문명을 건설함과 동시에 자연을 파괴하는 양면 가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죽음에 이르러서도 묘비를 세우는 인간의 행위는 지표와 우상을 동시에 보여주는 아이러니라 할 수 있죠. 심리학적 관점에서 세움의 대상은 다양하죠. 예컨대 낯을 세워 줘야지라는 메타포는 체면 혹은 기를 살려줘야 한다는 뜻이지요. 여기서 세움은 추상적인 정신 가치를 구체화하는 역량을 발휘합니다. 그러고 보면 마음의 생기를 위해서도 세움은 요긴합니다. 

 

이 시는 세움의 방식에 대해 은유적으로 에둘러 이야기하고 있네요. 달리 말해 세우거나 세워진 거시기의 가치나 의미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군요. 예컨대 시인은 세움의 결과가 아니라 세움의 과정/절차에 주목합니다. 시인은 바닷가 어부가 뻘에 말뚝 박는 법을 예로 들어 세움의 방법에 대해 말합니다. 전제적으로 정치망 말, 김 말, 그물 말, 호롱 말등 말의 종류를 다양하게 예시하는 것은, 이 말뚝을 박는 방식이 세상사에 두루 통용되는 보편적인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겠죠.

 

하여튼 뻘에 말뚝을 박기 위해서는 좌우로 또는 앞뒤로 흔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는 것 혹은 세운다는 것의 궁극적 목적은 흔들리지 않고 부동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일 텐데요. 그 흔들리지 않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흔드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는 역설인 거죠. 그것이 이 시의 핵심 의미인 것 같군요.


 

대체로 박히는 것의 단단한 고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으로 내리 박아야 합니다. 이것은 박히는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인 땅의 상황일 때이고요. 그런데 지금 박아야 할 기반은 물과 진흙이 섞인 입니다. 이 뻘은 또 지상의 일반적인 토질과 달리 무르고 연약해서 고정의 지지도가 약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뻘에 말을 박아놓고 나면 물과 진흙이 서로 엉켜 말을 꽉 물어 지지력을 강화합니다. 인위적인 힘을 가하지 않아도 자연 치유되는 것처럼 말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것입니다. 종국에는 뻘이 말뚝을 품어 제 몸으로 빨아들임으로써, 뻘과 말이 완전한 합일체를 이루는 것이지요. 흔들리지 않는 목표를 향하여 오히려 열심히 흔들어야 한다는 역설적 방법론이 우리 삶의 비의를 드러냅니다.

 

이처럼 특수한 박음세움의 방식 혹은 상황에 대해 어떤 관련 메시지가 떠오르시나요. 민주주의 정치의 본질 혹은 민중들 사이의 관계성이 부각된다고요? 민주정치란 연약하고 물러터진 뻘과 같은 민중들의 삶에 흔들리며 뿌리내려야 한다는 당위성이 생각난다고요? 그렇겠지요. , 또 어떤 힘이든지 때려 박는 것보다 흔들어 박는 것이 더 유연하고 효과적이라고요? 그렇겠네요. 지상에 세워진 모든 사물--물리적 구조물 혹은 정신적 이념이나 가치--들은 수평의 힘과 덕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요? 그래요. ‘세움에 공들이는 분들은 수평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해야 똑바로세움을 성취할 수 있다고요? 인간들 사이의 관계 역시 강압이나 강제보다 온유와 부드러움이 선행되어야 한다고요? 시인이여 자알 알았습니다.

 

아니라고요? 무엇보다 인간의 가장 역동적이고 에로틱한 성적 이미지가 선명하고 강력하게 환기된다고요? 아흐 다롱디리.


 /이 글은 <사람과 언론> 제2호(2018년 가을)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