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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수백 년 흘렀어도 겨울 녹이는 애틋한 사랑가

포토 에세이-언제나 포근한 광한루 너른 정원

 

금 술잔의 아름다운 술은 만백성의 피요(金樽美酒千人血)

옥쟁반의 맛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玉盤佳肴萬姓膏)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燭淚落時民淚落)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의 소리 드높도다(歌聲高處怨聲高)

 

남원 사또 변학도 생일잔치에 암행어사인 이몽룡이 걸인 행색으로 들어와 슬며시 내보인 시다. 탐관오리를 일필휘지로 꾸짖은 통렬한 시는 은유와 비유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이 시는 <춘향전>이 우리나라 최고의 고전소설로 일컬어지는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통쾌한 작품이다. 다음 장면은 더욱 극적인 반전이 펼쳐진다.

 

관아의 높은 뜰에 사랑하는 낭군이

어사또 되어 나타날 줄이야.

'죄인은 고개를 들라'

아! 꿈에도 그리던 님이시여..

눈물이 앞을 가리는 춘향의 모습.

살며시 춘향이 옆으로 다가서는 어사 이몽룡.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아!..

 

춘향전의 중심인 광한루는 수백 년 세월이 흘러도 애틋한 사랑, 기다림, 폭정과 폭압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해 왔다. 광한루의 겨울은 아늑하고 포근하다. 정원 어디선가 판소리 사랑가가 흘러나오면 춘향이와 이몽령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나타날 것만 같다.

 

보물 제281호.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의 광한루. 본래 이 건물은 조선 초기의 재상이었던 황희(黃喜)가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누각을 짓고 광통루(廣通樓)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다 1434년에 중건되어 정인지(鄭麟趾)가 이를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하면서 광한루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때의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타 버렸고, 현재의 건물은 1638년(인조 16)에 재건된 것이며, 장의국(張義國)이 누각 앞에 연못을 파고 오작교를 가설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광한루의 정겨운 정원에 들어서면 어디에선가 한 겨울에도 봄을 재촉하듯 따뜻한 사랑가가 들려온다. 춘향가 중 사랑가는 방문객들의 입에서 입으로 저절로 퍼져 정원을 가득 메운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지

이히~이히~ 이~~~ 내사랑이로다

아~~매~도 내 사랑아

...

사랑가를 함께 따라 흥얼거리며 광한루를 걷다보면 금세 300년 전 쯤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사람과 언론> 제7호(2019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