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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진단과 전망

대학 총장선거, 무엇이 문제인가?

대학 총장선거, 무엇이 문제인가?

 박주현



2015817.


부산대학교에서 한 교수의 투신(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발단은 정부가 대학의 총장 직선제를 간선제로 할 것을 강요한데 따른 저항에서 비롯됐다. 당시 고현철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총장직선제 유지와 대학민주화 촉구'를 외치며 대학 본부 건물(4)에서 투신하여 목숨을 잃었다. 고인이 남긴 유서는 지금도 두고두고 대학가에 암울한 메시지로 남아 있다.


"부산대 총장이 직선제를 고수하기로 한 자신의 공약을 여러 번 번복하더니 결국 직선제 포기를 선언하고 교육부 방침대로 일종의 간선제 수순 밟기에 들어갔다. 부산대는 현대사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 중 하나였는데, 참담한 심정일 뿐이다. 대학에서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서는 오직 직선제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이로 인해 부산대는 총장 직선제를 고수하기는 했으나 정부가 대학들을 매년 차등 지원하는 국고지원사업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높다. 대학 구성원들의 고충과 자괴감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정부에 밉보이면 대학 국고지원 삭감·중단

 

2016111.


부산대는 학교 재정위원회를 열고 교수들의 교육비 지급액을 자체 삭감한다는 내용의 추가경정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교육부가 부산대 총장 직선제 강행 이후 재정지원사업에서 삭감한 예산 187000여만원 중 부족한 134000여만원을 교수들이 충당하기로 결정한 것은 당시 안홍배 총장 직무대리의 제안을 수용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정부에 밉보여 지원받지 못한 국고 지원금을 국립대 교수들이 십시일반 걷어서 충당한다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부산대는 교육부의 국고지원사업 가운데 지방대학특성화사업(CK-1) 72400만원, 학부교육선도대학육성사업(ACE) 114900만원 등 모두 187300만원이 삭감됐다. 더욱이 사업종료를 불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상태에서 예산이 삭감됐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청와대와 정부가 그토록 바라던 대학 총장 간선제 대신 직선제를 고수한 때문에 괘씸죄로 걸린 것이라는 지적이 팽배하게 일었다.

 

201712.


오랜 공석 끝에 이뤄진 경북대 총장 취임식이 파행을 빚고 만다. 예정됐던 경북대 글로벌프라자 효석홀 입구에서 학생과 교수들이 총장 취임식 연기를 요구하는 피켓시위가 펼쳐졌기 때문. '2순위 총장'이라는 오명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경북대는 201412'총장후보 선출을 위한 선거'를 통해 1순위로 김사열 생명공학과 교수를, 2순위로 김상동 수학과 교수를 선정해 교육부에 임명제청을 요구했었다. 그런데 교육부는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총장임용 제청을 하지 않고 무슨 이유에선지 오래도록 방치했다.

이 과정에서 1순위로 선정된 김사열 교수는 교육부를 상대로 '총장임용 제청을 하지 않은 이유를 밝혀줄 것'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냈다. 그는 1심에서 승소했지만 교육부가 항소하면서 불길한 예감이 나돌았다. 결국 경북대는 1순위와 2순위 후보를 총장 임용 후보자로 재추천했지만 교육부는 2순위인 김상동 교수를 총장으로 덜컥 임명하고 말았다.


경북대 총장이 1순위가 아닌 2순위 선정자가 정부에 의해 결정되자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북대 총장 1순위로 선정된 김사열 교수가 정권에 비판적이기 때문에 청와대가 반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파문이 확대됐다. 이에 대해 본인인 김사열 교수도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우수석이 나를 반대했다는 이야기를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경북대 교수들과 총학생회가 2순위 후보자의 총장 선임에 반대하면서 단식에 들어가는 등 강하게 반발하자 김상동 교수는 총장 취임식을 연기하고 교수회는 9명의 교수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총장 임용과 관련된 의혹에 대한 조사에 나섰지만 후유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경북대 범비상대위원회(이하 범대위)20161228일부터 대학 본관 앞에서 단식투쟁을 벌였다. 이들은 "청와대와 교육부가 경북대 총장을 '2순위 후보'로 임명한 것은 국정농단의 결과"라고 규정지었다. 아울러 "정부의 임명총장 취임식을 강행하는 것은 국민에 의해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박근혜 정부에 굴종하는 행위이며 반시대적이고 반역사적 행위"라고 범대위는 규탄했다.

 

대학 총장 직선제, 6·10 민주화 운동 산물

 

지식과 지성의 상징인 상아탑 총장은 숱한 정부의 통제와 간섭으로 임명 또는 간선 등으로 이뤄져 오다 30년 전인 19876·10 민중항쟁 이후 직선제로 전환됐다. 값진 민주화 운동의 산물 중 하나다.


그러나 이러한 대학가의 총장 선출권도 이명박-박근혜 정부 기간에 철저히 유린됐다. 방송사들과 더불어 속칭 낙하산 또는 블랙리스트가 대학 총장 임명제청에도 개입된 것이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대학을 평가해서 차등적으로 국고를 지원하는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이 그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은 대학은 국고지원을 끊고 마음에 드는 대학은 국고지원을 늘려주는 파렴치한 통제수단이 그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 방법은 가장 강력한 대학 길들이기로 통용된다.


어쩔 수 없이 대다수 대학들이 손을 들고 앞 다투어 총장 직선제를 내려놓았다. 부산대 등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학 길들이기 정책에 스스로 항복하고 만 셈이다.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는 헌법 제314항을 청와대와 정부가 유린하고 대학들은 이에 동조하고 만 꼴이다.


국립대 총장 임명 청와대 개입...적폐 중 적폐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백년지대계인 교육에 개입하여 나라의 장래를 망친 사례를 곳곳에서 드러냈다. 대학 입시정책과 맞지 않은 고교 입시 및 교육정책, 잦은 대입제도 변경, 국사교과서의 국정화 시도, 거기에다 대학 총장의 임명제청 거부 등에서 잘 드러났다. 이것은 명백히 헌법 제314항을 위반하는 것들이다.


지난 박근혜 정부 때만 전국 국공립대 10여 곳이 총장임용제청 과정에서 퇴짜를 맞는 등 제청이 오랫동안 이뤄지지 않은 대학들은 대학운영에 차질을 빚었다.


그러다 정부는 201711월에서야 교육공무원인사위원회를 열어 총장이 공석 상태인 4곳에 대한 기존 후보자 적격 여부를 재심의했다. 이때까지 공주대는 38개월, 방송통신대는 32개월, 전주교대는 29개월, 광주교대는 11개월 동안 총장 없이 학사운영을 해 왔다.


교육부는 공주대·전주교대·방송통신대의 경우 1순위나 1·2순위 후보자 대부분 적격으로 판정했다. 이로써 이들 대학은 장기간 총장 공백 상태를 해소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유독 광주교대만 1·2순위 후보자 모두 부적격판정을 받았다.


광주교대는 지난해 10월 제6대 이정선 총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총장임용추천위원회를 열어 1·2순위 후보자를 선정해 교육부에 추천했으나 교육부는 두 후보가 총장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광주교대는 총장 공백 상태가 연장되는 상황이 됐고 결국 지난 328일 국립대 총장선거 중 최초로 온라인 투표로 실시됐다.

 

대학 민주화 망치는 끼리끼리 파벌문화

 

총장 직선제는 대학 민주화와 연결된다. 그러나 총장 직선제 방식에서 대학 파벌은 큰 문제점으로 등장했다. 총장 선출 과정에서의 줄서기와 학연·지연 등 연고주의로 뭉친 파벌은 선거를 혼탁 양상으로 내몰았다.

선거로 뽑힌 총장은 논공행상을 통해 보직을 배정하거나 능력을 떠나 보상 인사를 한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학 본연의 학문 연구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로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학연과 지연을 통한 끼리끼리식교수와 교직원 채용은 보이지 않는 학내 갈등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온 국민의 참여 속에 일군 촛불정국은 출범 직후 국가적 과제인 적폐청산에 주력하고 있는 가운데 대학가에선 총장 직선제 바람이 한창이다.

그동안 대학 총장은 간접 선거를 통한 정부의 임명제로 시행됐다. 대학 구성원들이 선출해 놓고도 교육부의 임명동의 절차와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의 임명절차를 거치는 형식의 이른바 간선제 총장 선출방식을 취했던 것이 이제는 직전세로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간선제는 대학 구성원별 대표자, 외부위원 등이 참여하는 총장추천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 총장 후보자를 선출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총장추천위원회 구성원과 구성 비율이 대학마다 상이한데다 후보자를 선출한 다음 국립대의 경우 교육부장관의 임용제청을 통해 대통령이, 사립대는 이사회에서 최종 임명하는 방식이어서 적지 않는 논란과 부작용이 속출해 왔다.


대학총장 선출방식에 관한 논란은 최근에 새롭게 생긴 것이 아니다. 19876.10 민주항쟁의 산물로 많은 대학들이 직선제를 시행했었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을 앞세운 이명박 정부 들어 대학총장 직선제를 간선제로 전환하라는 교육부의 권고에 따라 대부분 대학이 간선제로 전환하였다. 직선제가 교수사회에 파벌과 반목을 낳고 공약남발 등의 폐단을 낳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대학가에 총장 선출방식이 간선제로 전환하면서 대학의 자율성은 점점 시들해졌으며, 대학 구성원들의 의사는 민주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 교육부가 국고지원 예산을 볼모로 간선제로 유도했다는 거센 비난이 일었지만, 직선제를 고수하는 국립대학들은 교육부의 각종 재정지원사업 선정에서 불이익을 받았기 때문에 대부분 대학이 간선제로 속속 전환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대학 본부와 구성원들 간의 갈등은 날로 심화했고 지난 2015년에는 한 국립대의 교수가 직선제 보장을 요구하며 투신하는 사건까지 발생하였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대학 총장선거, 과제는?

 

대학은 우리사회에서 최고의 지성집단이고,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구성원들의 의견이 민주적으로 수렴될 수 있을 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도 한층 더 성숙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민주주의 꽃은 선거이다. 어떤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대학 총장을 간선제로 결정하는 곳은 찾아보기 어려운 제도다. 총장 직선제는 학생, 직원, 교수, 동문 등 대학 구성원들이 직접 선거에 참여해 후보자를 선출한다. 일반적으로 각 구성원 단위별로 투표반영 비율이 다르긴 하지만, 총장선출 과정에서 대다수 구성원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선거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비롯해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교육감 선거가 모두 직접선거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데 유독 자율과 지성을 상징하는 대학의 총장 선출방식이 예외라는 점은 참으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직선제 총장 선거가 부활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는 어찌 보면 촛불민심의 준엄한 요구이자 국가적 과제인 적폐청산 일부분이기도 하다.


대학 총장 선출방식이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뀐다고 해서 대학가에 누적됐던 모든 적폐가 일순간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학의 자율권을 침탈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대학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한층 강화하고 줄 세우기를 심화시키는 등 국고지원사업의 선택권 강화와 같은 시장경쟁원리를 교육에 도입함으로써 적폐의 대상이 된 단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경쟁과 강요의 본성은 결과 지향적이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학문연구와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학생교육을 위한 대학 운영이 실질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총장 직선제를 둘러싼 명암이 벌써 엇갈리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직선제를 두고 학생과 교직원들의 투표 참여 비율이 낮아 구성원들간에 불협화음이 나오는 곳이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총장 직선제는 대학 구성원이 총장을 직접 선출하는 방식이다. 모처럼 대학가에 찾아든 총장 직선제는 대학 구성원 모두 고루 참여해 그야말로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데는 해묵은 지연과 학연 등으로 얼룩진 파벌주의도 청산되어야 한다. 대학이 스스로 선거문화를 개선하여 공정하고 가장 민주적인 절차에 의한 총장 선출이 이뤄지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적폐청산은 요원할 것이다. 대학의 적폐청산이 총장 선거문화의 개선에서 비롯되기를 기대한다.


/<사람과 언론> 창간호(2018년 여름) 게재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