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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창간 권두언

<창간 권두언>

-박주현(발행인/언론학 박사)



느리게 걷고

찬찬히 살피며

담대하게 진실을 찾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 나갈 것




더 빠르게, 더 작게, 더 쉽게...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미디어 시장에까지 도래하면서 정보 전달이 갈수록 빨라지고 이용자들은 갈수록 작아지고 얇아지는 기계 안에서 쉽게 뉴스들을 검색하는 초스피드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즈음이다.

미디어 기술이 급격하게 발달하면서 긍정적인 측면으론 뉴스를 이용하는 국민들이 필요한 정보를 쉽게 검색하고 타인에게 파급시키는 행위가 훨씬 수월해졌으며, 미디어 시장이 외형적로는 형식적 다양성을 충족하고 있는 양태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면 1분마다 300시간이 넘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오고, 페이스북에선 한 달에 1억 편이 넘는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다고 할 정도의 초스피드 시대에 뉴스 이용자들은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다. 뉴스 이용자들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빠르게 넘겨가며 엄청난 양의 뉴스와 정보를 볼지 말지 결정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불과 평균 1.2초라는 분석 결과가 나올 정도다.


상대적으로 숨 한 번 쉬기에도 짧은 그 시간에 뉴스 이용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아야만 하는 게 뉴스 생산자 또는 생산 매체들의 현실이고 보면 여간 부담이 아닐 수 없다.“소비자에게는 천국이지만, 콘텐츠 생산자에게는 지옥 같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그러나 정보와 뉴스의 빠른 전달과 파급, 형식적 다양성이 반드시 뉴스와 정보의 품질 향상 또는 실질적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만은 아니다. 더구나 언론은 사회의 공기(公器)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조건 빠르고 쉽다고 하여도 공기가 사실을 왜곡하면 백해무익한 공해가 되기 쉽다. 진실을 보지 못하고 정의 앞에서 눈을 감는다면 언론은 공기가 아닌 공해에 다름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언론의 본령은 달라지지 않아

 

언론의 기능은 민주적 여론형성을 위하여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전달하여 민주시민사회의 유지 및 발전에 기여하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양질의 언론이 소멸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토양이 되는 건전한 토론을 위한 양질의 정보를 제공할 수단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해도 언론의 본령은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새로운 뉴스 플랫폼을 기존의 체계 내에서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인지 신중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특히 언론의 다양성은 외적 다양성이 아니라 정보의 품질 제고를 통한 실질적인의견 다양성확보에 초점이 맞춰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언론이 영역을 무조건 확장하거나 지나친 속보 경쟁에 매몰되는 것에서 탈피하여 양질의 뉴스와 정보를 꾸준하게 제공해야 할 것이다.


날로 속보 경쟁이 치열해만 가는 언론 현실에 대해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는 <신문과 방송> 4월호 특별 대담에서영화 한 편보다 뉴스를 보는 게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도록 언론사가 노력해야 한다.”고 의미 있는 지적을 했다.


아무리 4차 산업혁명이 언론 시장에 빠르게’, ‘더 빠르게바람을 몰고 온다 해도 언론의 본령과 사명은 변하지 않는다.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비판과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함은 바로 언론의 본령이자 책무다. 불편부당한 자세로 진실과 정의를 찾아내고 수호해 내야 하는 사명도 언론의 몫이다. 이러한 본령과 사명을 모르는 언론은 없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실천해 나가는 언론이 과연 얼마나 될까?

빠른 속보 경쟁 속에 매몰돼 거짓을 진실이라 쓰고 불의를 정의라고 외치는 언론은 없는지 되새겨 볼 때다.

 

적폐는 관습이자 주변에 상존, 늘 쓸어내는 언론의 노력 필요

 

이런 현실에서 창간한 <사람과 언론>은 사람이 사람답게 성장하고 교육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의 여론 형성을 위한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하고자 한다. 우리사회의 진정한 성찰과 숙의의 공론장이 되기 위해 <사람과 언론>은 느리게 걷고 찬찬히 살피며 때로는 담대하게 감추어진 진실을 찾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 나갈 것이다. 그것이 사명이자 소명이다.


<사람과 언론> 창간호는 세상을 조금씩 움직이게 하는 1인 미디어들을 찾아 주류 미디어 시장의 틈새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세상을 움직여 나가는 힘의 원천과 적폐청산의 남은 과제를 찬찬히 들어보았다.


정치 등 시사 분야의 1인 미디어 대가로 알려진 <아이엠피터>의 임병도 씨와 <전라도닷컴>의 발행인이자 편집장을 맡아 17년 째 운영해 오고 있는 황풍년 대표, 굵직한 우리사회의 정치 이슈들을 놓치지 않고 세세히 분석하고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오주르디’(필명)를 초대하기로 하고 인터뷰 섭외를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황풍년 대표가 건강이 악화돼 한 대학병원에서 치료중이라는 안타까운 소식이 가슴 아프게 했다. 처음에는 서면 인터뷰도 어려울 것이라는 답변이 왔다. 척박한 지역에서 잡지를 성공적으로 운영해 온 그에게 큰 병이 아니었으면 좋으련만, 제발 빨리 쾌차하여 다음호에 인터뷰할 수 있기를 기도하던 중 황 대표에게힘을 내어 전화 인터뷰를 해보겠다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 대표이자 <전라도닷컴>을 운영해 온 그가 창간을 앞둔 <사람과 언론>에게 할 말이 많은 모양이다. 용기와 희망을 불어 넣어주고자 하는 의도로 읽혔다.


그와 오랫동안 궁금했던 얘기를 나누며 자연스레 창간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잡지의 길을 먼저 걷기 시작한 그에게 앞으로 많은 조언과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황 대표는지역에서 잡지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게 쉽지 않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하게 만들어 올 연말에는 200호를 낼 계획이다고 자신한다. 벌써 8회째를 맞는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준비 때문에도 오랫동안 병원에 누워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는 그는 언론이 건강하고 바로서야 적폐가 사라질 것이라며 적폐청산을 위해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쓸고 또는 쓴다는 각오로 깨어 있는 시민들과 건강한 언론이 합심하여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에서 8년 째 정치와 시사 분야의 글쓰기로 가족들을 보살피며 살고 있는 아이엠피터’1인 미디어 운영자 임병도 씨는 서면으로 인터뷰가 이뤄졌다. 매 질문 마다 답변을 빼곡히 성의 있게 보내왔다. 블로그뿐만 아니라 그는 최근아이엠피터 TV’라는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증을 냈다고 한다. 1인 미디어로 활동하는 그는 소수 의견을 방송으로 보여주는 아이엠피터 TV’의 취지를 이해하고 지켜주는 시민들이 꼭 있다고 믿고 앞으로 나가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적폐를 적폐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관습이 문제라며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적폐를 상기시켜 주는 언론이 있다면 적폐 청산도 충분히 가능하다강조했다.


이어 사람과 세상 사이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정치와 시사 분야의 글쓰기로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오주르디와 인터뷰가 순조롭게 진행됐다. 역시 서면으로 먼저 질문을 주었다. 본명이 육근성 씨인 그가 추구하는 사람과 세상은 건강한 공간이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는 적폐는 깊고 은밀하고 견고한 정경유착. 언론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정권과 재벌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정권의 부패와 재벌의 비리 양쪽을 매개하는 중매쟁이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라며 주요 언론사의 뒤에는 재벌이 있다“‘건강한 사회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 ‘정의롭고 정직한 매체에 더 많은 글을 발표하고 싶다. 그런 매체와는 설렘으로 손을 잡을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강준만 교수, 신정일 사학자, 평론가들 무게 있는 칼럼 연재, 비평들로 출발

 

다음으로 창간호 칼럼 청탁 대상 1순위는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였다. 그는 여전히 활동이 왕성하다. 최근 사회 지식 프라임: 청소년을 위한 통합사회(인물과사상사)’란 책을 출간한데 이어 언론에 기고한 글을 통해 우리 사회의 화두를 통렬히 비판하며 대안도 제시해 주고 있다. 강 교수는 고맙게도 <사람과 언론> 창간호에 글로 적극 참여해 주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주제와 상관없이 평소의 주장이나 지론의 글이면 좋겠다는 요청에 선뜻 승낙해 주었다.


강 교수는 ‘‘금의환향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란 제목의 심도 있는 글을 보내왔다. 지역의 시각으로 현실을 냉철하게 꿰뚫어 본 칼럼이다.

강 교수는 지역 언론의 주요 메뉴 중의 하나는 서울 가서 성공한 전북 출신 유명 인사들을 다루는 것이며 그들이 잘 되면 잘 될수록 전북이 잘 된다고 믿는 신앙은 금의환향(錦衣還鄕) 이데올로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강고하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그는 뿌리 중심의 금의환향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어느 지역 사람이건 전북으로 불러 들여 전북인이 될 수 있게끔 만들어야겠다는 발상의 전환과 더불어 그에 걸맞는 정책적 변화를 시도하고 이를 널리 알리는 선전선동을 열심히 해보는 게 어떨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글의 말미에서 의미심장한 지적을 했다. “삶의 지혜를 이미 깨달은 젊은이들은 전북에 남으려고 애쓰는데, 주변에서 너 정도면 서울갈 줄 알았는데....’라는 식으로 루저 취급하는 이 엽기적인 자학의 문화를 이젠 끝장낼 때가 되었다고 했다.


이어우리 땅 걷기이사장이자 역사학자, 향토 순례가로 유명한 신정일 선생을 창간호에 초대하는데 성공했다. ‘길에서 역사를 만나다란 기행 글을 통해 향토사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지혜를 전해 주기로 선뜻 응해 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금강의 발원지 뜸봉샘에서 시작된 금강의 물길을 따라서란 그의 첫 연재 글에서부터 열정이 묻어났다. 역사와 대화하며 유유히 흐르는 금강의 발원지를 따라 얽히고설킨 얘기들을 술술 풀어냈다. 관련 사진들도 풍성히 찍어서 제공해 주었다. 졸졸졸 흐르는 물줄기며, 다랑다랑 펼쳐진 논두렁길을 역사에 버무려 잘 묘사해 주었다. 강낭콩보다 푸른 논개의 절개를 금강 발원지를 걸으며 찾아내는 그의 탁월한 감각이 곳곳에 녹아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는 것을 조심해야

 

이번 창간호 편집의 특징은 특별 인터뷰를 통한 1인 미디어들의 세상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과 적폐청산 과제를 비중 있게 실었다. 또한 강준만 교수와 이강록 편집고문의 지역과 언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통렬한 지적과 함께 무게 있는 대안을 제시한 칼럼은 창간호 의제로 적절했다. 이밖에 뉴스 큐레이션과 논문 큐레이션, 언론 풍향계는 언론을 바로 보고 사회의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기획한 연재물들로 느리게 걸으며 찬찬히 살피며 꾸준히 이어 나갈 것을 다짐한다.


촛불혁명 이후 우리 사회는 적폐 청산이란 무겁고 지난한 궤도를 숨 가쁘게 달려왔지만 달라진 건 크게 없다. 적폐 청산은 단순한 인적 청산만으로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찌든 적폐가 씻겨나도록 제도와 문화, 인식과 가치 등 국가적 시스템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만 한다. 문득 니체((Friedrich Nietzsche)가 한 말 중 이런 대목이 떠오른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 볼 때 심연도 당신을 들여다본다.”


니체의 말처럼 괴물(적폐)과 싸우는 동안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촛불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매우 사려 깊고 한편으론 매우 엄중하고 단호하게 청산해야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뼈저린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사람과 언론> 창간호(2018년 여름) 게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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