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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박주현 칼럼

<박주현 칼럼>언론자유지수와 언론인 수준

언론자유지수와 언론인 수준

 -박주현(언론학 박사)



한국 언론자유지수 43..미국 앞질렀다.’

한국, 1년 만에 언론자유분야 모범생이 되다.’

‘2018 대한민국 언론자유지수 미국보다 자유롭다.’

세계 언론자유지수 발표한국 작년보다 20계단 상승

 

지난 425일 국경 없는 기자회(RSF, Reporters Without Borders)가 발표한 2018년 세계 언론자유지수(Press Freedom Index)에서 우리나라가 180개국 중 43위를 기록했다. 이발표가 나오기 무섭게 국내 언론사들은 앞 다투어 요란한 제목들을 붙여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뉴스 이용자인 국민들로부터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 소릴 들었던 언론인들이 호들갑을 떠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어 보였다.

 

지난해 63위와 비교했을 때 무려 20계단이나 상승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언론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될만하다. 특히 미국의 순위(45)를 앞지른 것은 획기적 사건이다. 그동안 이명박·박근혜 두 정권 시절 내리 권력에 짓밟히고 망가졌던 언론인들은 자존심이 회복되었다는 듯이 지표를 대문짝만하게 공개하며 환호하는 현상을 바라보며 자괴감이 드는 이유는 뭘까?

언론자유지수는 국경 없는 기자회가 평가 기관의 점수를 집계하여 매년 각 국가별로 순위를 발표하는 지표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송한 설문항목을 국경 없는 기자회의 협력기관(5개 대륙의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단체들)과 전 세계의 특파원, 언론인, 연구원, 법률전문가와 인권운동가 등이 광범위하게 작성하고 평가여 매년 국가의 순위를 비교·발표한다.

 

기레기’, ‘언론자유 후퇴 국가소릴 들은 지가 엊그제

 

그동안 우리나라는 노무현 정부에서 30-40위권에 진입했으나 이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는 69(2009), 70(2016)까지 추락하는 수모를 면치 못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50위를 기록했던 언론자유지수는 연이어 급락해 201457, 201560, 201670위로 역대 최하위를 기록하며 세계적으로 언론자유 후퇴 국가로 지목됐다. 언론자유지수가 10년간 추락하다 급격한 상승세를 보인 사례는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기 어렵지만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보여준 촛불시민혁명의 가치와 본질을 잘 취재하고 보도하며 민주주의 회복에 이바지한 점, 촛불정권 출범 이후 국민의 준엄한 요구인 적폐청산을 향한 언론 본령 수행, 삼성을 비롯한 선출되지 않은 권력(자본-언론)에 대한 비판을 활발히 전개한 점, 앞선 두 정권 하에서 신뢰도와 공정성이 나락으로 추락했던 공영방송의 정상화 회복 등이 언론자유지수 급상승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조사에서도 여전히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을 지켰다. 노르웨이는 2년 연속 언론자유지수 1위를 기록했으며 스웨덴 2, 네덜란드 3위 등 모두가 민주주의 척도인 민주·복지·언론 등의 지표 수준이 높은 나라들이다.

 

언론자유는 곧 민주주의 수준과 직결되며 이는 다시 행복지수 또는 부패지수 등과도 밀접한 상관관계를 지닌다. 표현의 자유와 직접 관련이 있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일수록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고 상대적으로 민주주의가 잘 된 국가라는 것은 여러 지표에서 입증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언론자유지수는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언론자유와 관련된 각국의 상황과 흐름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언론자유지수는 2002년 이후 줄곧 북유럽 선진국가들 중 핀란드,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등이 최 상위권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지점이 있다. 그건 바로 언론자유지수가 언론인들의 의식과 신뢰 수준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언론은 오랫동안 선출된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선출되지 않은 자본권력에도 떳떳하지 못해왔다. 국민의 편에 제대로 서지 못한 언론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따갑기만 하다. 오죽했으면 세월호 참사 때는 기레기란 비아냥을 들을 정도였으니 언론인들의 반성과 성찰이 늘 요구돼 왔다. 언론자유지수가 들쭉날쭉 하는 현실은 이를 잘 웅변해 준다.

 

노무현 정부 - 39, 49, 48, 34, 31.

이명박 정부 - 39, 47, 69, 42, 44.

박근혜 정부 - 50, 57, 60, 70, 63.

문재인 정부 - 43.

 

지난 2002년 이후 16년 동안 역대 정부별로 수치화한 국내 언론자유지수 지표다. 전 세계 180개 국가에서 우리나라 언론자유의 수준은 국경 없는 기자회가 2002년부터 처음 발표하기 시작한 이래 노무현 정부 때 가장 높은 3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진입은 고사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서 내리 연거푸 하락해 70위권으로 밀려났다. 정부의 언론장악 정책과 인터넷 등에서의 표현의 자유 억압, 블랙리스트를 통한 검열 강화 등이 하락을 부추겨왔다. 특히 국내 최고의 신문 또는 최상의 언론이라고 참칭해 온 수구 보수언론사들은 권력의 편에 서서 비판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면서 설득하거나 심지어 겁박하는 태도를 일삼아왔다.


삼성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한국 언론

 

세월호 참사와 촛불시민혁명 때도 이들 보수언론들은 국민의 분노와 불안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권력의 편에서 이러한 대형 이슈를 수면 아래로 잠재우는데 앞장서 국민들의 지탄을 받아왔다. 지금도 이들 언론사들은 여론을 호도하며 훈계하고 때로는 국민을 나무라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 특히 지난 정권 시절 국정원 대선개입 사실이 낱낱이 드러난 시점에도, 막대한 혈세가 4대강 사업 등 국책 사업에 낭비되고 있는 시점에도,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던 당일부터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요구하며 단식 중인 유가족들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태도에 분노하는 시점에도 보수언론들은 '진저리', '극도의 피로감' 등의 표현을 써가며 권력을 비호하는데 앞장서지 않았던가.

 

마치 세월호 참사가 먼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인 양, "더 이상 언급하는 것 자체가 싫다"는 투로 훈계하며 호통을 치는 서울의 과점 보수신문들이나 기자들을 '앵벌이' 취급하며 나가서 광고 또는 구독자를 확보하도록 경쟁을 부추기는 지역신문들이나 참담한 실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오히려 어떠한 압력이나 간섭에서도 자유롭기 위해 광고나 정부 또는 이익단체의 지원을 일체 배제하고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으로 운영되는 <뉴스타파>의 활약이 주류 언론사들보다 돋보인다.

 

지난 422일부터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복심이라는 장충기 전 사장과 한국 엘리트 집단과의 관계를 알 수 있는 문자를 연속으로 공개 보도해 전 사회적 파문을 낳았다. 공개된 명단에는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언론인을 비롯한 학자들의 부끄러운 민낯이 속속 담겨있다. <뉴스타파>가 공개한 문자를 보면 전현직 여야 국회의원들은 물론이고 전직 장관, 국정원 간부, 판사, 대학총장, 언론사 간부 등 대한민국에서 권력을 쥐고 있다는 인물들은 줄줄이 포함됐다.

 

국민 불행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언론과 권력의 관계

 

문제는 대한민국 최고의 신문’, ‘최상의 언론이라 스스로 칭하는 언론사들이 이처럼 부끄럽고 참담한 사실 앞에 침묵하거나 마지못해 따라가는 형국이다. 한국의 언론자유지수가 급격히 상승했다고 해서 한국의 언론사와 언론인들의 수준이 올라갔다고 보면 곤란하다. 아직도 한국의 언론은 관습쯤으로 여기는 적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를 선택적으로 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인과 언론사가 깨어나지 않으면 언론자유지수가 아무리 높아도 순간 기레기로 전락하고 만다는 진리를 잘 보여준 나라가 우리 말고 또 어디 있을까?

 

그동안 수구 보수언론들은 권력의 랩독(Lapdog : 애완견), 가드독(Guard dog : 경비견) 또는 슬리핑독(Sleeping dog : 잠자는 개)이란 소릴 들어왔다. 권력이 하라는 대로 따르는 언론과 권력의 일체관계는 당연히 국민에게는 큰 불편과 불행을 가져다주기 마련이다. 선진국일수록 언론자유지수가 높은 이유는 권력과 언론이 적절한 긴장(견제·비판)관계를 유지하면서 국민의 알권리에 충실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가장 위협하는 언론과 권력의 관계는 일체관계인 강압적 통제관계 또는 공생·유착관계일 때다. 물론 지나친 적대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는 우리나라의 그리 길지 않은 역사적 사례와 언론자유지수가 낙후된 다른 나라 사례들에서 여실히 보여 왔다. 언론과 권력 그리고 재벌이 유착·공생관계일 때 국가와 국민은 불행해진다. 이는 길지 않은 역사가 증명해 준 교훈이다.                   /<사람과 언론> 창간호(2018년 여름) 게재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