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 한자 같은 지명 다른 지역, 왜?
같은 지명 다른 지역, 임실군 성수면, 진안군 성수면
조성욱(전북대 지리교육과 교수)
지명(地名, 땅이름)은 사람의 이름인 인명(人名)과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지명은 사람들에 의해 붙여진 인위적인 명명이다. 그리고 서로 간의 약속에 의해서 사용되는 사회계약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즉, 사람들이 서로 공감하고 같이 부르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지명은 처음 만들어질 때 그 지역의 기후이나 지형 등 자연조건의 특성에 의해서 부여된 경우, 교통이나 풍수지리 등 인문조건에 영향을 받아서 부여된 경우가 있다. 아니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와 같이 면을 통합하면서 각 면명에서 한 자씩 취해서 만들어진 경우도 있다(상치등면+하치등면=쌍치면). 따라서 지명의 의미를 살펴보면 왜 그런 지명이 붙여졌는지를 알 수 있고, 한 번 붙여진 지명은 쉽게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성질을 가진다.
사람 이름 역시 본인 스스로 명명하지 않고, 선대인 부모나 조부모가 부여했다는 측면에서 지명과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사람의 이름은 성씨, 사주팔자, 항렬(돌림자) 등을 참조하여 짓는다는 점에서 해당 지역의 자연조건과 인문조건을 반영하는 지명과는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사람도 이름이 같은 사람이 가까이에 있으면 혼란스러운 것과 같이 지명도 같은 지명이 가까이에 있을 경우 어느 곳을 의미하는지 혼란이 발생한다. 인명이나 지명은 그 사람이나 그 지역에 관한 지식을 분류해서 저장하는 분류 기능을 가지고 있고, 또한 여러 설명 없이 이름만 이야기 하면 그 사람 또는 그 지역이라는 것을 서로 전제하고 이야기가 가능한 의사소통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군 경계 임실군-진안군에 한글과 한자 똑 같은 두 면명...왜?
면명(面名) 중에 가장 많은 것은 남면(南面)이다. 전국적으로 15개 시군에 분포하는데, 특히 강원도 인제군 남면과 양구군 남면은 면의 경계까지 접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로 전라북도에도 진안군의 성수면과 임실군의 성수면이 경계를 접하고 있다. 즉, 군 경계를 접하고 있는 임실군과 진안군에 한글과 한자가 똑 같은 성수면(聖壽面)이 있다. 진안군의 남쪽에 있는 진안 성수면과 임실군의 북쪽에 위치하는 임실 성수면은 약 1.5km 가량의 면 경계까지 접하고 있다. 그리고 진안읍과 임실읍을 잇는 30번 국도가 두 면의 접경지역을 연결해 주고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지명으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서 진안 성수와 임실 성수로 구분하여 부르고 있다.
왜 이렇게 가까운 지역에 똑같은 면명이 붙여졌을까? 어찌보면 진안군과 임실군이라는 완전히 다른 행정구역이기도 하지만, 두 곳 모두 성수면이라는 면명이 붙여진 것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이다. 그 이전에는 이런 면명이 없었다. 임실군 성수면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상동면과 하동면을 합해서 하나의 면을 만들면서 성수면이 되었고, 진안군 성수면 역시 일서면과 이서면을 합하면서 새로운 면명으로 성수면이 만들어졌다.
또한 임실군과 진안군에는 성수면 뿐만이 아니라, 한자도 같은 성수산(聖壽山)이 3개가 있다. 임실군 성수면과 진안군 백운면의 경계에 있는 성수산(876m), 진안군 백운면과 장수군 천천면의 경계에 위치하는 성수산(1,059m), 진안군 성수면에 있는 성수산(482m)이다.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를 중심으로 반경 7km 내에 3개의 성수산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 지역에는 지명의 어원이 같은 ‘성수(聖壽)’라는 이름이 2개의 면명에 사용되고, 3개의 산명에 사용된 것일까? 성수(聖壽)라는 어원은 조선 왕조를 세운 이성계가 ‘성수만세(聖壽萬歲)를 누리리라’라는 계시를 받았다는 임실군 성수면에 위치하는 성수산의 상이암(上耳庵)에 전해져 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왕건-이성계 전설 유래...좋은 지명 서로 양보하지 않아
임실 성수산의 남쪽 사면에 위치하는 상이암에는 고려를 건국한 왕건(877-943)과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1335-1408)의 전설이 전해져 온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 건국을 도왔던 도선 대사(827-898)는 임실의 성수산을 천자를 맞이할 성지로 생각하고 왕건에게 백일기도를 드릴 것을 부탁했다. 이에 왕건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렸으나 아무런 효험이 없어서 3일을 더 기도한 뒤 담수(潭水, 쏘)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데, 홀연히 한 사람이 나타나서 서로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왕건은 해득을 하게 되었고, 그 기쁨을 ‘환희담(歡喜潭)’이라는 글씨로 남겼다. 왕건은 고려를 건국한 후에 이곳에 도선암(道詵庵)이라는 절을 세웠다.
이와 함께 조선 태조 이성계에 관련된 전설도 전해져 오는데, 조선 개국을 도왔던 무학 대사(1327-1405)와 이성계가 이곳 환희담에서 3일 동안 목욕을 했는데 사미(沙彌, 동자승)가 함께 목욕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3일 후에 그 스님이 이 절의 스님이 아니고 부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성계는 이곳 바위에 ‘삼청동(三淸洞)’이라는 글씨를 남겼는데, 이 글씨는 지금도 남아있다. 이 후 정성을 드리던 중 93일째 밤에 하늘에서 빛이 나고 상서로운 기운이 서리면서 ‘이공(李公)은 성수만세(聖壽萬歲)를 누리리라’가 3번 들렸다고 한다. 이성계는 조선을 개국한 후에 이곳의 도선암을 상이암(上耳庵, 성수만세가 상(上)감의 귀(耳)에 들렸다는 의미)으로 고쳤다(1394년).
이와 같이 이 곳 면명과 산명의 어원이 된 ‘성수(聖壽)’는 이 곳 상이암의 전설에서 유래하였다. 이 후 상이암이 위치하는 이 산은 성수산으로 불리워졌고, 다른 이름으로 불리던 백운면의 성수산(미재산, 미방산, 복지봉, 백운산 등으로 불리웠음), 진안 성수면의 성수산(생남산, 반룡산 등으로 불리웠음)에 성수산이라는 산명이 붙여지게 되었다. 이 후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때에 새로운 면명을 제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임실 성수면은 상이암이 위치하는 임실 성수산(876m)에 근원을 두고 면명을 성수면이라고 하였고, 진안 성수면은 면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는 성수산(482m)에 근원을 두고 성수면이라고 했다.
이와 같이 3개의 성수산과 2개의 성수면은 임실 성수산 상이암의 전설에 기반한 지명이다. 경계를 접하고 있는 군 지역에서 같은 면명이 제정된 것은 1914년 당시 면명 제정과정에서 군별로 별도의 작업이 이루어졌거나, 아니면 서로 좋은 지명을 양보하지 않아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임실 성수면의 면사무소는 양지리에 있고, 진안 성수면 사무소는 외궁리에 위치하는데, 두 지역의 직선거리는 약 8.8km이다.
/이 글은 <사람과 언론> 제2호(2018년 가을호)에 게재된 글입니다.